세계의 끝 여자친구

읽고 나서 ‘난 이 시가 참 좋단다’ 라고 말했더니. ‘그건 희선씨한테 주려고 쓴 시가 아니니까 김칫국 마시지 마세요’, 그렇게 대답하더군요. 난 연애 이야기라면 언제나 귀가 솔깃한 사람이러서 자꾸 캐물었죠. ‘이 시에 나오는 여자친구가 누구니?’ 그랬더니,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더라구요. ‘아휴, 당연히 착하겠지. 얘기해봐. 어떻게 만났는데?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지?’ 내가 물었죠. ‘맞아요. 그렇게요. 세상의 끝까지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요.’
세상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Phantom Pain

환상통(幻想痛)
– 김신용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베어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 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것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은 없고, 바퀴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창 밖,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상처에서, 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아지겠지 쉼표, 점.점.점.

J 쉼표,
내가 사랑한 사람
쉼표,
나를 사랑한 사람
쉼표,
마침표. 말줄임표…
너만 들어 말줄임표… 말줄임표… 미안하고
쉼표,
빈줄
빈줄
나아지겠지 쉼표, 점. 점. 점.
사랑, 두려움의 한 현상
튜더스의 한 장면, 헨리 8세는 토마스 모어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랑받는 군주보다는 두려움을 주는 군주가 되겠다. 사랑은 배신 당하지만, 두려움은 배신당하지 않는다.’
(대사를 그대로 적은 것은 아니고, 대량 이런 뜻이다. 나라안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선정을 권하는 모어에게 헨리8세가 전하는 말이다. 원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있는 말이라고 한다.)
두려움은 사랑을 낳는다. 생에 대한 갈망, 소멸에 대한 두려움, 상승에의 갈망, 파멸에 대한 두려움, 소통에 대한 갈망, 자아분열에 대한 두려움 …. 스톡홀롬 신드롬, 권력과 권위에 대한 복족, 섹스만 하는 커플…
‘양들의 침묵’은 한니발 렉터와 클라리스 스탈링의 사랑 이야기이다.
